독곡 마음 도시락싸기 feat. 다정한 CAT diary > 일반자료

나는 그리 따뜻한 사람이 아니다. 어찌 보면 좀 철벽스럽고, 누군가 능글능글 다가올 때면 쌀쌀맞게 굴 때도 많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낯도 많이 가리는 편이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용사와 할머니들을 스테이 시작 전 두 번 뵀지만, 나에겐 아직 약간 얼음. 이런 모습이 있었다. 조부모님과 한집에 지낸 경험이 있는지라 어르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보다는 사람과 사람으로 처음 만날 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유머 코드도 딱히 좋지 않아.. 오히려 헛소리나 말실수를 하지 않을까 조심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소개팅도 많이 싫어했었나 보다.)

원래 이 스테이에서 하려했던 것 중 하나는 할머니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나는 커뮤니티에서 주는 안정감과 유대감이 사람에게 큰 치유를 준다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일기에도 썼듯이 코로나 때문에 당장은 만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마을의 분위기 자체도 약간은 얼음.이다. 월화수목 있었던 활동시간을 비롯 아예 모임이 연기되거나 없어졌다. 코로나 시대에 흔하고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장님과 부녀회장님과 노인회장님의 회의 하에 한동안은 회관을 아예 사용하지 않으니 이곳을 이용할 수 있게끔 허락해주셨다.
최대한 미룰 수 있는 일은 미루더라도 어쩌면 항상 함께해야만 하지는 않았던, (그리고 일정상 2주의 기간을 다시 잡기에도 애매했던) 나의 스테이는 이렇게 조심스럽게 시작이 됐다.

오늘의 마을 풍경, 마을 할머니들과 콜라보로 이루어진 마을 벽화작업

어찌 생각하면 이 마을에 천천히 적응해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많은 사람을 한번에 만나지 않고 한분씩 아주 조금씩 이 마을을 알아가고 있다. 그래서 마음은 무겁지만 적응하는 데 있어서는 힘듦 없이 밥도 잘해먹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지내고 있다. ( 이 와중에도 나를 걱정해 함께해주고 도와주는 지구용사가 너무 고맙다)

종종 길을 다니다 마주치는 한분한분께 조심스레 인사를 건넨다. 가장 처음 뵀던 분은 다행히도 코로나를 피해 가신 이장님 내외분이고, 그다음은 이미 예전에 코로나를 겪은 앞집 분들이다. (그럼에도 항상 마스크 끼고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오늘은 얼굴은 볼 수 없더라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께 어떤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다 지구용사와 함께 아이디어를 내어 실행해보기로 했다.

마을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씩 그림 그리기 수업을 따로 진행할 정도로 그림을 좋아하시는 할머니들이 많다. 코로나 때문에 집안에서 보내는 무료한 시간, 조금이라도 덜 심심하시라고 내가 그린 '다시 시작, CAT diary'의 컬러링 시트와 작은 색연필 세트를 전달하기로 했다. (물론 비대면) 마침 고창 주간지(?)가 마을회관에 잔뜩 있어 주간지로 작은 메모와 시트 7장, 그리고 색연필을 감싸 클립으로 집고 길을 나섰다. 누가 어디 사시는지 알턱이 없기 때문에 이장님께 물어봐 할머니들의 집을 찾았고 현관문 근처에 살짝 놓고 왔다. 인기척을 느끼셨으면 바로 아셨을 텐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조용히 얘기도 없이 들렸다 얘기도 없이 홀연히 사라진 작가.. ㅎㅎㅎ

당장은 아니더라도 곧 발견하시고 잠시나마 힐링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해가 지고있는 독곡마을

가까울 수 없을때, 어떻게 우리는 다정해질 수 있을까? 더 붉어지는 마을의 노을을 보며 다시 생각해본다. 코로나 시대의 스테이는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이제 막 3일 차)

 

 

* 이 글은 고창문화도시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출처: https://ar490.tistory.com/74?category=861841 [Joben is travelling: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