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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가까워질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다정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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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04회 작성일 22-10-2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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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이란 이름으로 이주를 하는 청년이 많은 요즘, 자리 잡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수 또한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이 많다. 오래된 농촌마을은 씨족이 살고 있거나 씨족이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을 아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다 보니 옆집의 사정을 잘 아는 편이고 낯선 사람이 쉬이 어울릴 수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커뮤니티는 어느 정도 폐쇄적일 수 있고, 새로운 사람으로서 그 커뮤니티에 들어간다는 것은 시간과 무엇보다도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그 노력을 기울이기에 낯선 농촌마을이라는 곳은 상황도 경우도 조금은 막연할 수 있다.

나의 경우는 가볍게 2주간의 스테이기에 부담감이 좀 덜했지만, 관계가 중요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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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마을, 독곡img.jpg마지막 산책에서의 독곡마을 풍경


내가 지내기로 한 독곡마을은 고창 운곡습지 주변의 어느 한 농촌마을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폐쇄적인 커뮤니티와는 반대로 굉장히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셨다. ( 첫 만남에 나는 솔직히 굉장히 뻘줌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멍을 때리기도..) 이미 이 마을에 몇 번 왔었던 지구용사와 같이 와서 그런지 말도 편하게 하시고, 아가가 여기 와서 혼자 잘 지낼 수 있을런가 걱정해주시는 분도 계셨다. (우리 할머니가 아빠를 걱정하듯이...) 이 마을에 종종 오시는 할머니를 돌봐주는 복지사(?) 분도 이 마을 분위기가 참 따뜻하고 좋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나 상황이 좋지만은 않은 것이 내가 도착하기 직전 코로나가 터져, 마을회관은 당연히 폐쇄가 되었고 이웃 간에도 약간은 서먹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할머니들이 점심마다 모여 밥도 같이 먹고, 식사 후에는 느긋하게 쉬어가던 회관은 내가 지내는 2주 동안 초반에는 정말 썰렁했고(그래서 내가 짐으로 가득 채웠다.) 후반기 코로나가 지나갈 무렵에서야 할머니들을 조금 만날 수 있었다.

치유에 있어 주변 환경이 꽤 중요한데, 운곡습지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있지만, 내가 있는 커뮤니티의 사람 간의 관계 형성도 정말 중요하지 않은가. 내가 느끼는 따뜻함과 편안함의 포인트는 이런 관계 형성이다.

평소 아침저녁으로 왔다 갔다 산책하면서 만나는 분들과는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면서 얼굴을 알게 되었고, 이미 내가 오기 전 이장님과 부녀회장님, 노인회장님의 입을 통해 내가 여기 와서 머무르는 작가라는 걸 대부분의 분들이 알고 계셔서 낯설어하지 않으셨다. 심지어 지금 농사가 어떻고 이렇고 얘기도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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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산책길에서 만난 분의 하우스에 잠시 들려 깨말리는 풍경을 구경했다.



나는 이렇게 관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때도 있었고, 마을의 중심인 회관에서 창 너머로 주변을 관찰하며 이곳에 좀 더 익숙해질 때도 있었다.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번의 중요한 과제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챙겨간 캣다이어리 그림이 있어 도움이 되었고, 거기에 더해 독곡마을 풍경채집을 해 그림을 그려 남기기로 하였다.

2022.08.16 - [일상같은 여행/S. Korea] - 독곡 풍경 채집

이 계절에 딱 어울리는 빨갛게 잘 마른 고추와 고소하게 말라가는 , 그리고 회관에 나와 함께한, 나의 하루에 많은 배경음악을 깔아주었던 앵매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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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관의 처마 아래는 이글루처럼 생긴 앵매기집이 10개도 넘게 있는데, 여름이 번식기라 그런지 새끼들에게 밥을 주느라 하루 종일 굉장히 분주했다. 어미가 집 가까이 오기만 하면 새끼들은 어떻게 아는지 밥 달라고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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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곡에서 지내면서 내가 본 세상을 다시 여기 계신 분들께 보여주는 그림이다. 그림을 좋아하시는 분이 많으니 색칠하면서 내가 느낀 힐링 포인트를 이 분들도 가지셨으면 한다. 단순히 나 혼자 그리는 그림이 아닌 함께 완성하는 그림을 좋아해, 펜화를 그리는 것도 나의 그림 작업의 하나의 포인트이기에 이번 작업은 나의 작업 의도가 굉장히 잘 반영된 것이니 기뻤다. 그리고 어쩌면 그 대상을 알고 있으니 조금은 묘한 기분도 들었다.
 

img.jpg자신이 색칠한 캣다이어리를 보여주시는 오랜만에 회관에 오신 점례할머니와 나


그림은 기억하는 것들이 있어 더해질 거지만, 완성은 조금 더 있어야 할거 같다.


그림은 이렇게 되고, 관계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먹는 것이다. 나는 싫어하는 사람과 같이 밥을 먹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노나 먹지 않는다. 줘도 안 먹는다. 그런데 이게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친한 사람하고 맛난 거 노나 먹는 것.

그래서 내가 준비했던 것은 지구용사와 같이 먹고 반한 노란 단호박 식혜, 만돌 갯벌에서 정신없이 등을 바쳐 캔 동죽, 자연농법으로 정성스레 기른 꼬미다 레알의무화과였다.

초반 로컬푸드 매장에 가서 호박식혜 한 병을 샀다. 아니 이거 이렇게 맛있을 일인가 하여 한 병으로는 아쉬우니 큼지막한 단호박 한 개와 엿기름을 사 왔다. 회관에 쌀이 많다고 밥해먹으라 하셨으니 이걸로 식혜를 빚어 노나 먹어야지 라는 번뜩이는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달달한 순간은 공유하면 좋으니까.
 

img.jpg나의 과도한 사랑으로 가득찬 밥통img.jpg큼지막하니 잘익은 단호박img.jpg식혜 밥알이 잘 삭았나 보고있다img.jpg

완성된, 또 먹고싶은 호박식혜

노나 먹을 것을 신경 쓰고 있었는지 완성된 식혜는 무려 두 냄비나 되었다. 그것도 큰 두 냄비. 온 동네 사람이 한잔씩은 마실 수 있을 거 같은 양이었다. 그래서 종종 만나는 분, 자주 인사 나눴던 분들께 드리고 치유문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작가분들과도 나눠마셨다. 갑자기 식혜라니,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냐고 묻는 분이 계셨지만 사실 식혜는 밥통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나 대신 밥통이 열심히 일했다. (단)


지난 글에서 단 시간에 지구용사와 함께 어마어마한 양의 동죽을 캤는데, 이걸 앞집 옆집 마을분들과 프로젝트 작가분들과 노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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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밥상에 올라온 동죽국

갯벌체험장에서 알려주신 대로 하루정도 해감을 하니 동죽에 모래가 많아 잘 안 먹는다고 했던 앞집 사장님한테 해감 정말 잘 됐다고 칭찬도 받고, 최후의 밥상으로 내가 끌인 동죽국은 국물이 끝내줬다. (짠)



그리고 하루 지구용사의 친구가 가족과 함께 운영하는 꼬미다 레알 농장에 가 홍무화과와 청무화과를 잔뜩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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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하우스에 들어서자마자 달달한 향이 진동했다. 자연농법으로 기른 무화과는 딴 그 자리에서 바로 맛볼 수 있었는데, 끝도 없이 계속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올해의 무화과 개시는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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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부자

잔뜩 딴 무화과는 한 광주리가 됐는데, 마을로 돌아와 만난 분들께 맛보시라고 하나둘 건네고, 주변 마을 사람들과 노나 먹었다. (단)

단짝이 착착 맞아 들어갔다.


내가 이렇게 소소하게 나누어주기도 했지만, 얻어먹은 것도 돌아보면 무진장 많았다.


첫날 만난 앞집에선 밥을 해 먹는다니 잘 챙겨 먹으라고 깻잎장아찌, 풋고추, 집된장을 넉넉히 나눠주셨다. 그걸로 국도 끓이고 찍어먹고 찌개도 만들고 마지막 날까지 아주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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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삭한 노각이 실하다

그리고 바로 뒤 텃밭을 하시는 옆집에서는 직접 기른 참외와 노각오이를 넉넉히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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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받은 파와 고추와 마늘

동죽을 나눠드리려 들린, 아침마다 다른 할머니에게 도시락을 갔다 주시는 할머니께서는 국 끓일 때 쓰라고 집 옆 작은 텃밭에서 파를 뽑아 깨끗이 다듬어 주셨다.

마지막 날 산책길의 끝에선 부녀회장님 집 옆길을 지나가는데, 나를 본 부녀회장님이 나를 빨리오라고 부르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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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회장님의 뒷부엌. 저기에 서서 내를 부르고 계셨다.


가보니 집 뒤편 주방에서 손자 손녀 주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닭을 튀기고 계셨다. 딱 잘 만났으니 와서 어서 먹어보라는 것이었다. 저녁을 안 먹지만, 튀긴 닭을 언제 먹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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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삭노릇한 수제닭튀김

그렇게 하나 먹으니 하나 더 먹고, 또 더 먹으라고 하시니 배가 부르게 치킨을 먹었다. 그렇게 너무나도 반가운 얼굴로 나에게 닭튀김을 건네는 사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다른 분들의 반찬과 채소도 정말 감사했지만, 이 순간 나의 독곡 스테이가 꽤나 성공적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여기 있는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기까진 아니지만, 내가 다시 올 수 있는 곳이 생겼구나라고 생각했다. 역시 먹을 것은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고 가깝게 만들어주는 것이 있다.

마을 밖에선 같은 프로젝트 속 다른 프로젝트를 맡고 계신 준우 작가님이 복분자주를 한병 선물로 주셨다. 직접 집에서 복분자 원액으로 담그신 거라니 이런 귀하고 맛난 것은 서울에 있는 친구들과 나눠먹을 것이다. (나 혼자 앉은뱅이가 될 수 없다.)

 

img.jpg지구용사와 함께한 마지막 식탁. 나를 위해 묵도 두부도 감자도 수도없이 많을 것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것을 채워주고 챙겨주었던 지구용사. 같이 맛난 걸 원 없이 해먹고 사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까이할 수 없었지만, 작은 그림과 먹을 것 한 조각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우리는 조금은 더 가까워지고 다정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다정함이 푸르른 자연과 더해져 큰 치유와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마지막 날, 마지막 인사 편지와 내가 만든 나무 소품들을 남기며 조금은 가까워진 마음을 사진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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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고창문화도시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출처: https://ar490.tistory.com/80?category=861841 [Joben is travelling: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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